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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말하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아이 캔 두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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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우리 사회를 반영하다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은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고졸 사원을 위한 토익반이 운영되던 90년대에 실상을 담은 영화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다른 유니폼을 입은 것은 물론 승진도 쉽지 않았던 '자영(주인공)'은 토익 600점을 넘어 대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던 자영은 어느 날 삼진 그룹 공장에 방문했다 폐수 유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그녀는 침묵 대신 싸움을 선택한다. 내부고발이 쉽지 않았던 시기임에도 말단 사원인 그녀는 회사동료이자 친구인 '유나'와 '보람'과 힘을 모아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수학 올림피아드 출신인 보람은 축소된 페놀 유출양을 계산했고, 삐딱함이 매력인 유나는 동료사원과 딜을 통해 문제의 사건파일을 입수한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영이 내부고발자로 색출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셋이서 시작한 이 일은 다른 고졸사원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간다.영화에서는 고졸사원에 대한 차별은 물론 사내 권력다툼도 다룬다. 윗사람의 잘못을 회사 차원에서 덮어주기도 하고 회사의 비전이 아닌 개인의 욕망을 쫓아 회사를 헐값에 매각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페놀 유출 사건 뒤에는 주가를 폭락시켜 회사를 싸게 매각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Bear Hug" 프로젝트가 비지니스 용어로 밝혀지면서 고졸사원들은 주주의 반대표를 받아 회사의 매각을 무산시킨다. 아무 힘없어 보이던 그들은 결국 회사를 지킨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기록된다.

영화속 명대사

고졸사원들은 부서에서 주로 보조업무를 맡는다. 능력이 뛰어나고 장기근속을 했어도 중요한 업무를 맡을 수 없다. 회사의 부조리한 시스템은 능력 있는 자들에게 가장 작은 업무를 맡긴다.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유나는 회의를 준비하고 커피를 타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정사원의 아이디어로 둔갑되기 마련이다. 어느 날 회의시간에 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디어를 낸다. 그 아이디어가 반부장의 마음에 쏙 들게되면서 마케팅으로 활용된다.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다는 마케팅부 반부장의 말로 존재감없던 유나는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아이디어를 빼앗기기 일쑤였기에 자신의 생각이 정식적으로 통과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말 기뻤을 것이다. 우리의 성장은 타인에게 맞춰져선 안된다. 나의 성장여부는 오직 나의 과거와 비교될 때 정확히 측정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고졸사원들은 인정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주로 커피를 타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부를 때 가서 일을 돕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등장한 이 대사는 영화가 드러내고 싶은 주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편견 없이 열린 자세로 사람을 대하는 것, 작은 일을 맡은 사람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자영은 자신을 tiny person이라 칭한다. 그런 존재가 아님에도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토익반 수업 때가 되면 "우리는 할 수 있다"라고 외친다. 사자가 스스로 고양이라 여기는 순간 자신의 본성을 잃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작고 연약한 존재가 아닌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로 여겨야 할 것이다.

침묵 대신 목소리를 내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보았을 땐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영어에 관한 이야기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영어가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신랄하게 담아낸 영화였다. 병든 사회에 정화작용을 이끄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직이 아닌 일반 평범한 사원이라는 점이 굉장히 멋지게 느껴졌다. 그들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늘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문제 상황에 닥쳤을 때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다. 우리가 이 시대에 가져야 할 진정한 국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20세기의 문제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거나, 임신이 축복이 아닌 짐이 되는 경우가 현 시대에도 빈번하다. 이 영화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에 침묵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저 회사를 단순히 돈 버는 곳으로 여겼다면 이렇게 회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여성의 정체성과 그 역할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회사의 주인은 회장이 아닌 주주들이라는 점을 짚어낸 것도 좋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특히 재벌2-3세가 갖는 사회적 특권이 강하다. 회사의 오너가 전문경영인이 아닌 재벌 가족인 경우가 많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위기를 겪는 회사가 주주들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주주가 아닌 일반 소액주주(일명 개미)들이 힘을 합쳐 큰 역할을 해낸다. 모든 회사는 회장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주주는 물론, 회사의 직원과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 . 한 나비의 날갯짓이 큰 태풍을 일으키듯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그 나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의에 대항하고 침묵하지 않으며 소리를 낼 때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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