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맛으로 풀어낸 괴수영화
한국의 시대적 특성과 유머를 잘 반영하기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괴물>은 한강에 나타난 괴생명체와 싸우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강두(송강호)의 가족은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구매한 오징어 다리 하나쯤은 가볍게 해치워버리는 강두는 영화 속에서 조금 모자란듯 보이지만, 부성애만큼은 뛰어난 사람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어느 날 한강에 등장한 괴물이 강두의 딸 현서를 낚아채 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강두, 남주, 남일 세 남매는 하나씩 부족한 점들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다. 마지막 순간에 힘을 잃는 양궁선수 남주, 불같은 성격의 남일, 순진한 듯 바보 같은 강두는 아버지의 지휘 아래 괴물로부터 현서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괴물과 접촉되었다는 이유로 격리가 된 가족은 죽은 줄 알았던 현서에게서 전화를 오면서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괴물과 맞닥뜨린 현장에서 희봉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삼남매는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유독가스 발포되는 현장을 찾아가 현서를 찾기 위해 애쓴다. 마지막으로 괴물과 대치하던 순간, 한 때 데모를 했던 남일은 괴물에게 화염병을 던졌고 양궁선수인 남주는 괴물을 향해 마지막 화살을 쏘아올린다. 특별한 재능이 없던 강두는 길바닥에 떨어진 긴 철봉을 맨 손으로 들고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유독가스를 마신 괴물은 결국 죽고 마는데, 강두의 딸인 현서 역시 죽음을 맞게 된다. 슬픔에 잠겼던 강두가족은 결국 현서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아이를 거둔다. 괴물이 휩쓸고 간 한강에서 그들은 이전과 마찬가지인 일상을 이어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난다.
현실적인 영화 속 장치들
괴물은 봉준호감독이 고등학교 때 잠실대교 교각에서 보았던 괴생물체를 목격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강에 왜 괴물이 나타나게 됐는가'에 대한 답은 영화의 첫머리에서 등장한다. 2000년대 용산 미군기지에서 포름알데히드 약품을 정화과정 없이 한강에 방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의 통제 아래 있지 않은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 병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단면을 그려냈다. 괴물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으로 나타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강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물줄기이기도 하다. 한강의 오염과 괴물의 탄생은 여러 문제로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불균형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괴물은 굉장한 위험한 존재로 등장한다. 실제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정부는 괴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와 거짓된 조사 결과들을 내놓고 사회가 통제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합동장례식을 치르곤 한다. 영화는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슬픔의 장소조차 정치의 이벤트 장소로 활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현실과 너무 동일한 나머지 헛웃음이 났다. 강두의 가족이 현서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는 아무도 이 가족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직 제대로 된 민주화나 시민인식, 정치와 언론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괴물은 이러한 한국의 본질적 문제를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
서울시민들의 쉼의 공간인 한강, 그곳에서 매점을 하는 강두가족은 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한강을 찾은 이들에게 소소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일이자 낙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2평이 채 되지 않는 컨테이너 매점 안에서 저녁이면 그들은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거창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행복했던 이유는 그들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현서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무너진 매점을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의 허기를 채운 것은 컵라면이 아닌 가족의 사랑이었다. 어딨는지 알 수 없지만, 현서와 동고동락했던 그 작은 컨테이너가 그들에겐 쉼의 공간이자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괴물에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괴물이 우리 사회에 미칠 악영향만을 다룰 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을 찾기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공포로 조성된 사회의 단결이었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뛰어다닌건 모두 가족이었다. 500원짜리 동전을 모아 현서의 핸드폰을 사주려 했던 강두의 마음은 매일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인이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국가를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더 믿음직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우리 소시민의 삶은 누가 지킬 수 있을까? 진정한 국가는 우리가 만든 이 사회에서 개인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전히 시민들의 괴로움은 외면한채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눈에 띄기 바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변화가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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