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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말하다

플라이트 93, 우리가 몰랐던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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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그날의 이야기

이른 아침 공항 관제센터의 풍경으로 시작된 영화는 레이더 속에 수많은 비행기를 비춘다. 자신에게 할당된 비행기의 움직임을 체크하며 송수신하는 게 관제사의 역할이다. 9월 11일 한 관제사는 비행기 속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고 납치를 의심한다. 민간항공기 납치는 오래 전의 일어났던 일로 여기며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실제로 항공기 4대가 납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거짓인 줄 알았던 비행기 납치가 실제로 일어남과 동시에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가 그들의 목적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플라이트 93은 세계무역센터 사건에 가려진 유나이티드 93편에 대한 9월 11일의 기록을 영화화했다. 이 비행기는 워싱턴에 위치한 백악관으로 향하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93편 비행기는 추락 후 4분까지 우리는 물론 군 당국조차 납치되었는지 몰랐던 비행기로 알려졌다. 납치됐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테러범과 싸웠고 결국 미국을 지켜냈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모든 이들이 희생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다. 911 테러 당시의 미국의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뉴스에서 보였던 사건뿐만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제탑, 군, 백악관, 비행기 속 사람들 등의 시선을 모두 담아낸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겪어본 적 없고 당장 손쓸 방법도 없는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날이기에 모두가 이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기억하다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첫 번째로 비행기 안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건물 속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희생된 사람들을 가장 크게 추모했던 것 같다.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갔을 그 비행길을 나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비행기 탑승 후 우리가 가려던 목적지가 아닌 항로를 이탈하여 어디로 갈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비행기 안의 사람들을 그전까지 떠올리지 못했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서로 다른 신에게 서로 다른 바람으로 기도하는 영화 속 모습에 눈물이 나고 화가 났다. 유나이티드 93편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용기는 미국을 더 큰 절망으로부터 건져냈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사랑한다'라는 말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불의와 맞서 싸운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번째로 관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단순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지시하는 곳이 아니라, 비행기가 제대로 된 경로로 가고 있는지 문제가 있진 않은지, 자신이 맡은 비행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한 모습이 너무 멋졌다.비행기가 납치됐다는 말을 얼핏들었던 것도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비행기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핀다. 그들의 눈과 귀가 있기에 모두가 안전한 여행길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날을 기억하며

미국에는 911메모리얼파크가 있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미국인의 의지와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추모하는 곳이다.별개로 유나이티드93편 탑승자를 추모하는 플라이트93국립기념지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국가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정부와 사건의 수습에 참여한 기관들, 지켜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마주하며 많이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빗나간 종교신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지 않나 싶다.자신의 영광을 위해 타인을 기꺼이 해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다는게 너무 두렵다. 이 사건은 여전히 의문과 의심으로 얼룩져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건의 배후자도 말이 없기에 우리는 남겨진 기록들로 이날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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