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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말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욕심을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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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다르지 않은 영화 속 이야기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욕심'이다. 시골로 이사 가던 치히로와 치히로의 부모는 길을 잘못 들게 되면서 낯선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치히로의 부모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취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음식에 손을 대게 되고, 결국은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게 된다. 돼지로 변하게 된 부모를 되찾기 유바바에게 찾아간 치히로, 유바바에게로부터 새로운 이름 센을 부여받고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된다. 치히로는 온천에서 다양한 신들을 섬기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유바바에게 저주를 받은 또 한 명의 인물 하쿠는 치히로를 도와 부정한 이곳을 바꾸기 위해 힘을 보탠다. 영화는'돈이면 된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물질만능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시대와 닮았다. 욕심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들의 세계에서도 동일하다는 점이 꽤 재밌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탐하고, 나의 것이 아님에도 내 것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은 우리가 가진 본성과도 같다. 자신의 본성을 잘 컨트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과 함께하기보다 이기적인 모습을 가진채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 유바바를 비롯한 온천에서 일하는 모두가 돈을 쫓는다. 욕심은 다툼과 분쟁을 만든다. 나아가 타인을 짓밟고 이용하기도 한다.

포스터에 드러난 인물의 성격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치히로는 순수하다. 엄마 아빠를 구하겠다는 다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낸 그는 남의 것을 탐하거나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입술을 앙 다문듯한 포스터 속 치히로의 모습은 영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 봤을 치히로는 영화 초반 나약한 눈물을 보이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화의 여러 사건을 지나며 타인을 아끼는 마음과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굳게 지켜내는 한 인간으로 점점 성장해나간다.반면 영화 포스터 뒤에 보이는 돼지(아버지)는 치히로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에 갇혀 흐리멍덩한 시선을 한 채 그저 보이는 대로, 바라는 대로 시선에 이끌려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가

우리는 타인의 겉모습, 재능, 유능함, 번지르르함에 시선을 빼앗겨 본질을 놓칠 때가 많다. 좋아 보이는 것만을 쫓아 옳은 길이 든 나쁜 길이든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간다. 영화 속에서 모두가 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행동할 때 치히로는 그렇지 않다. 치히로의 마음이 하쿠를 변하게 했고, 돼지로 변했던 엄마 아빠는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며 가오나시에겐 친구를 만들어줬다. 한 사람이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순수함과 도덕성,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치히로는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센 곧 치히로다. 유바바가 주어진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의 본명을 잊게 되는 장면도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내 안에 '나라는 진실된 인간을 두고 세상이 만들어준 이름과 허물을 덧입고 그것이 나인 양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본 모습을 잊어버린채 말이다.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를 인정하고 발견하고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타인이 만든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잊고 사는 것을 돌이켜보면 좋겠다.강의 신은 사람들이 버린 갖가지 쓰레기로 인해 본연의 모습을 잃고 오물 귀신으로 오해받는다. 나라는 존재 역시, 순수하고 깨끗했던 마음이 수많은 욕심과 욕망들로 인해 검게 물들어있을지도 모른다. 강의 신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처럼 우리도 나의 욕심만 쫓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순수한 마음과 도덕성을 되찾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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